한국국제정치학회와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이사장 유현석)이 12~14일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변환과 한·중·일 관계:전문가와 차세대 리더의 만남’을 공동 주최했다. 한·중·일 학자와 차세대 리더가 소중한 자리에 참가했다. 본 행사 12일에는 ‘새로운 한·중·일 관계의 모색:비전과 전망’을 주제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원로학자 대담이 있었다. 한국국제정치학회 최영종(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회장의 사회로 서진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와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한·중·일 협력의 오늘과 미래를 진단했다. 다음은 대담 요지.

-사회(최영종 교수)=한·중·일이 ‘의미 있는 협력의 단위’가 될 수 있는가. 한·중·일 협력에 대한 강조는 우리나라 외교정책·국제정치 연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도 있다.
▶문정인 교수=물론이다.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 TCS)’이 이미 존재한다. 준(準) 제도가 됐다. 협력의 단위가 아니냐를 넘어 이제는 이떻게 3국이 노력해 동북아 지역을 ‘운명공동체’로 만드느냐가 과제다.
▶서진영 교수=한·중·일 3국 관계나 영국·프랑스·독일 3국 관계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영국·프랑스·독일은 신념·가치의 공동체, 한·중·일은 역사·문화·생활을 공유하는 운명공동체라는 차이는 있지만, 한쪽은 협력이 가능하고 다른 쪽은 아니라고 볼 수 없다.
▶장달중 교수=냉전 이후 아시아공동체에 대한 아이디어 주도권은 대개 한국에서 나왔다. 한·중·일이 아직도 ‘소집단 귀소본능’에서 해방되지 못한 게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다. 3국 내부에서 리버럴(liberal), 관용적인(tolerant) 세력이 연합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한·중·일 협력에서 중·일 경쟁은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서 교수=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중·일 경쟁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서 ‘중계 외교’를 해야 한다. 한·중·일 3국 관계도 강대국 간의 긴장 속에서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장 교수=미·중 관계의 틀 속에서 중·일 관계가 결정된다. 지금 미·중 관계는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전혀 없던 냉전시대의 미·소 관계와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일본도 이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최근 일본은 이전과 달리 대만 문제나 미·중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우리 외교 당국자들이 깊이 고민해야 한다.
▶문 교수=중·일 갈등으로 위기가 오면 우리에게 상당한 어려움이 될 것이다. 미국이 중요한 변수이긴 하지만 미국이 이 지역에서 100년, 200년 계속 있을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 미국 변수가 다는 아니다. 중·일 충돌 없이 한·중·일 협력·통합·공존의 길로 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하다.

 

-미국은 한·중·일 협력에서 어떤 의미인가. 특히 미국의 우려를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는가.
▶장 교수=미국이 떠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서 아시아의 비중은 줄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사이에 두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일본을 끌고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을 당연히 이용해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의 아시아 개입이 아시아 균형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선 일본의 독자적 노선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 교수=경제질서를 만들 때는 사실상 미국 없이 가능하다. 결국 안보질서를 만들 때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를 만들겠다고 하면 중국은 환영할 것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역사의 관성 때문이라도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동북아의 안보협력체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서 교수=미국이 아시아에서 퇴각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장기적 추세라고 보지만, 일본이 독자 생존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이르려면 30년에서 50년은 더 걸릴 것이다. 지금 미국을 배제하고 동북아 3국만을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할 것이다. 또 미국이 완전히 물러가기 전에는 일본이 어떻게든 미국을 끌고 갈 것이다.

 

-한·중·일이 협력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같은 동북아국가연합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서 교수=동북아국가연합은 아직은 먼 얘기다. 꼭 좋은 것인지 근거도 없다. 현 단계에서는 3국 사무국이 제대로 기능하고 3국 정상회의가 정례화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3국 간 경제 교류를 촉진시키는 기능주의인 협력의 표본이 될 수 있다. 한·미 정부의 의도에 따라서는 한·중·일의 협력 속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는 안보 협력을 파일럿 프로젝트로 다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한 성과도 낼 수 있다고 본다.
▶장 교수=동북아 협력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실존적인 위협이 존재함에도 외교 대화의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리콴유(李光耀)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한·중·일 협력사무국이 동북아 외교 대화의 활성화·제도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지만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문 교수=한·중·일 협력사무국과 정상회담·6자회담을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3국 협력사무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6자회담을 재개·확대시키면, 동북아국가연합은 아니더라도 동북아 정상회의를 제도화할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북한 핵 문제에도 진전이 있을 것이다. 3국 협력사무국은 정치적 비중이 작고 인원도 30명밖에 안 된다. 힘을 실어주기 위해 협력기금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한·중·일 협력을 이야기하지만, 국민들 간의 호감도가 약화되는 문제가 있다.
▶서 교수=어떤 때는 국가 호감도 조사 결과를 보고 절망적일 때가 있다. 하지만 민간 교류나 관광 데이터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언론·학계·정치권 등 여론 형성 주도층이 민족감정 조작을 하고 있다. 해결을 위해선 ‘인문 연대’의 지속적 추진과 엘리트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상호교류가 필요하다.
▶문 교수=기본적으로 그런 조사를 안 했으면 좋겠다. 편승효과(bandwagon effect)로 부정적으로 답변하는 경향도 있고, 상대 국민이 부정적이면 나도 부정적이 되는 상호작용 효과도 있다.
▶장 교수=이슈에 따라 기복이 있다. 현안 이슈의 영향을 막아야 한다. 소셜미디어 같은 수단을 통한 선정적 경향도 심하다. 그럼에도 시민 대 시민의 관계는 옛날보다 좋아지고 있다. 여론 형성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지역공동체 개념은 한국이 주도하고 있기에 우리가 지역 협력구도를 만드는 데 상당히 창의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투자가 부족하다는 게 아쉽다. 일본이나 중국에 한국학 센터가 없다. 정치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