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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2017년 3월 17일 한강포럼 조찬강연)
 중국정치연구실  | 2017·04·07 09:54 | HIT : 1,224 | VOTE : 90 |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사회과학원 원장) 

I 한중관계: ‘최상의 우호관계’의 명암(明暗)

 금년은 한중 수교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5년간 한중관계는 사드 문제가 돌출하기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한국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까지도 한중관계를 ‘역사상 최상의 우호관계’라고 자평할 만큼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경제 영역에서의 양국 협력은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확대 심화 발전하면서 양국의 상호 의존도도 깊어졌다. 이를테면 1992년 수교 당시 63.7억 달러이었던 양국 교역액은 2015년 현재 2,273억 달러로 약 36배 급증하면서 중국은 2004년 이래 우리의 최대 교역 대상국이 되었고, 2007년에는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 되었으며, 한국 경제에서 중국과의 교역 비중은 미국과 일본과의 교역을 합한 것보다 더 커졌다. 인적 교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92년 13만 명이었던 양국 방문객 수는 2015년 현재 1,000천만 명을 돌파해 1042만 명 (방중 한국인 444.4만명, 방한 중국인 598.4만명)으로 폭증했고, 중국내 한국 유학생도 2015년 현재 약 6만3천명으로 중국내 외국인 유학생 중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유학생 집단이 되었다.

이와 같이 경제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인적 교류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양국 교류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정치 및 외교적 차원에서도 날로 긴밀해 지고 있었다. 1992년 수교 당시 양국관계는 ‘우호협력관계’라고 규정됐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시대에는 ‘21세기를 향한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고, 2003년 노무현 정부시대에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으며,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정상회담에서는 마침내 양국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서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가 강조되었다. 다시 말해 양국관계는 경제적, 사회문화적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모색하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특히 전략적 차원에서도 상호 협력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2015년 3월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 (AIIB)에 가입하기로 결정했으며, 9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 참석했으며, 2015년 12월에는 한중 FTA를 비준함으로써 내외에서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거침없이 발전하던 양국의 협력관계는 2016년 7월에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공식 결정함으로써 심각한 위기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직접 나서서 3번이나 공개적으로 사드의 한국 배치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중국은 한국에 대한 깊은 실망과 좌절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보복 조치를 통해 한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중 관계는 사드 문제로 이렇게 심각한 국면까지 초래하게 되었는가.

돌이켜보면 한중 관계는 지난 25년간 긍정적 측면만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니다. 한중관계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었다. 2000년도의 마늘 파동에서부터 2003년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역사 분쟁, 2010년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둘러싼 한중간의 심각한 이견과 갈등, 그리고 현재에도 진행 중인 어업분쟁과 이어도 문제 등, 다양한 이슈 영역에서 한중간의 마찰과 충돌,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갈등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지금까지는 구동존이 (求同存異)의 정신, 즉 ‘상호 다른 점은 그대로 두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정신’에 입각해서 무난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사드 문제는 지금까지의 다른 갈등 이슈와 달리 한국과 중국,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사드 문제가 단순히 첨단 군사 무기의 배치에 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아니라 탈냉전시대 미중 관계와 한중 관계 발전의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협력 공감대를 위협할 수 있는 핵심 전략적 이익의 충돌 문제이기 때문이다.  

II 한중관계 발전과 전략 환경의 변화  

지난 25년 한중관계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양국의 경제적 상호 보완성, 지리적 인접성 그리고 문화적 동질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고, 지금도 그런 객관적 여건 때문에 한국과 중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환경적 조건과 더불어 탈냉전과 세계화시대가 제공하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전략적 이해와 공감대가 양국 관계 발전의 중요한 배경 요인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국과 중국은 체제와 이념,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양국관계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이질적 요소도 많았다. 특히, 한국전쟁이란 비극적 경험도 있고, 또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의 역사도 짧고, 상호 신뢰도 높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이고 실용적 이익만을 바탕으로 양국 관계 발전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과 세계화라는 시대적 변화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 지도자들과 국민들로 하여금 이념과 체제의 굴레를 벗어나 공동이익과 공동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1989년 천안문 사건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을 계속 추진하였고, 또한 중국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대붕괴라는 세기적 위기에 직면하고도 미국과 서방세계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개혁개방정책을 더욱 확대 추진할 수 있었으며, 한국은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통해 평양으로 가려고 한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한중 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켰고, 또 그 이후 양국의 비약적 교류 협력과 관계 발전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처럼 탈냉전과 세계화시대가 제공하는 전략적 기회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상호 협력관계를 확대 심화 발전시켰고, 그 결과 한국과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 안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당한 발전의 기회와 혜택을 향유할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와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개혁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고도성장 경제를 실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이후 30여년 이상 계속 10% 안팎의 고도성장 경제발전을 달성해 경제규모에서는 미국까지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으로 굴기(崛起)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중국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강대국 간 세력개편을 촉진해 이른바 세력전이 (power shift)시대를 촉발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확산되면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강대국 간 경쟁과 갈등이 확대 심화되고, 북한의 위협이 증대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위험성도 증대했다. 이미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완충국가로서 북한의 전략 가치를 고려해 북한을 포용하려는 중국의 전략 이익과,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려는 한국의 전략 이익이 충돌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사실 동아시아의 전략 환경은 2008년을 전후로 눈에 띠게 변화하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미국의 쇠퇴를 예고하는 것이었다면, 반대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은 부강한 중국의 등장을 세계에 선언하는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신흥 강대국 중국의 등장과 더불어 미국 영향력의 쇠퇴가 서서히 드러나는 세력전이 시대에 중국사회에서는 중국의 이익과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중화 민족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서방세계에 도전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른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韜光養晦)’란 소극적 대외정책보다는 팽창된 중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대국 외교가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서방세계에 대해서 할 말은 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이라고 간주되는 문제들, 이를테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은 과거보다 더 거친 언행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경제적 보복이나 무력시위도 서슴치 않는 기세등등한 행동 (咄咄逼人的行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면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고 하고 있으며, 미국은 아시아 중시 정책을 내세우면서 군사-경제-외교적 차원에서 중국을 포위, 압박하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미국의 사드 한국 배치도 중국에 대한 군사적 포위망의 일환으로 보고 있으며,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중국의 안보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III 불안정한 미중관계와 한중관계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21세기 국제정치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한편으로는 탈냉전과 세계화시대에 국가 간 상호의존과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과 발전의 기회가 증대하고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강대국 간 세력 개편과정에서 상호 경쟁-견제-충돌의 위험성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단순하게 적대적이냐, 협력적이냐의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적대적-경쟁적-협력적 측면이 공존하고 있는 대단히 복합적이고 유동적 관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경제적 차원에 미국과 중국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상호 투입, 통합되어 있어서 일부에서는 차이메리카 (Chimerica)라고 할 만큼 고도의 상호 의존적이고 융합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미국과 중국의 상호 의존 관계는 냉전기 공포의 핵 균형과 유사한 ‘재정적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어느 일방이 상대의 양보를 강압할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군사-안보-전략의 차원에서 보면 신흥 강대국 중국의 도전과 패권국가 미국의 상호 견제-경쟁-갈등은 결국 대규모 전쟁을 촉발 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 (Thucydides Trap)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1세기에 미국과 중국은 협력-경쟁-갈등의 복합적이고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고, 그런 미국과 중국의 협력-경쟁-갈등의 복합적이고 불안정한 관계는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며, 이런 국면은 여러 나라들에게 복잡하고도 미묘한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하여 줄어들고 있고, 신흥 강대국인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패권 국가이고, 중국은 아직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력개편 과정이 상당한 시일이 걸려 진행될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상호 경쟁과 견제가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게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질 것이다. 그런데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신흥 강대국 중국과의 경제 협력 관계를 확대발전시키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의 위협에 대한 안전장치로 미국과의 안보 협력관계를 유지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겠다.  

IV 21기 한국외교의 과제-동맹외교와 전략외교의 조화 

미국과 중국의 상호 협력-경쟁-갈등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21세기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어떻게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 입장에서 미국과의 동맹관계 유지는 사활적 국가이익이지만, 동시에 부강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도 도외시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이 되고 있기 때문에 21세기 한국외교의 최대 과제는 한·미 동맹관계와 한·중 전략협력동반자 관계의 ‘조화’를 견지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의 조화 발전을 위해 우리는 한·중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관리해 갈 것인가.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한중관계를 풀어가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 관계를 뒷받침해 온 구동존이 (求同存異)의 논리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한다. 즉, 체제와 가치관의 차이, 전략적 핵심이익의 차이는 그대로 두고 실용적 이익을 확대해 가는 구동존이의 방식으로는 한·중관계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드 문제는 바로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강대국 간 세력전이가 진행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기에는 오히려 핵심적 이익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상호간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상호 협력과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이른바 화이부동 (和而不同)의 외교가 필요하고, 또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에 대해서는 중개외교(仲介外交)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 대해서는 굳건한 동맹외교를 견지하면서도 미국에 일방적으로 편승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상호간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바탕에서도 상호 협력과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이른바 화이부동 외교를 추진해야 하며, 미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성사시키는’ 중개외교를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국이 동아시아 신질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비전을 바탕으로 강대국들에게 상호 갈등과 공동 파멸의 길보다는 상호 협력과 공동번영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화이부동, 중개외교를 실제로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중개자로서 한국의 국가적 신뢰가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고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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